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*자료 검수 : 문건일, 오성봉, 강평수, 이종권 

 

지경청(체마소)

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 610-1

지경청(체마소)


- 청수리 1354

‘가메오름’의 ‘냇골’쪽으로 나간 곳으로 대정과 제주목의 경계가 되는 지점이라고 한다. 경계라는 뜻으로 ‘지경청(地境廳)이라 하였고 관원들이 순찰을 할 때 말을 바꿔 타는 작은 역이 있어 ‘체마소(遞馬所)’라 한다고 전해진다. 

‘체마소’는 한경면 청수리에 있는 지경 이름으로, 옛날 목사가 순력을 돌 때, 제주목에서 타고 왔던 말은 돌리고 마중나왔던 대정현의 말로 갈아타고 갔다고 한다. 체마소는 제주목사가 말을 갈아탈 때 쉬었던 장소라고 하는데, 목사가 앉아서 쉬었다는 곳은 ‘지경청’이라고 한다. 순력을 돌 때 수행했던 사람이 ‘목사가 앉았던 자리는 명당이라고 해서 묘를 썼다’는 전설을 갖고 있다.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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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2008. 2. 16. 강성현(1935년 생, 한경면 청수리) 제공, 김순자 채록>

체마소라는 게 그 이름 지은 것부터 말씀을 드리겟습니다. 체마소라는 것은 이 저 요럽게 씁니다. 이 바꿀 체(替) 자라고도 하고 이제 보일 체자라고도 합니다. (종이에 替馬所라고 한자로 씀)

이름을 지은 이유는 제주 목사가 대정현에 순회를 나갈려고 하면은 여기는 모관, 여긴 모관이라고 험니다. 목사가 체마소까지 오면은 대정골 그 관리들이 그 말을 가지고 여기에서 대기를 헷다가 목사가 거기까지 모관에서 모셔오며는 그 중간에서 갈아탄 건 저희들은 모릅니다. 거기까지 오며는 그 타고 온 말덜은 그대로 돌려보내고, 사람도 돌려보내고, 대정골에서 온 말 허고 대정골 그 현관들이 목사를 모시고 갓다. 그래서 체마소라고도 하고 지금 지경청이라고도 합니다. 

지경청이라고 허는 것은 그 터 지(地) 자가 잇는데, 목사가 앉았던 자리다. 그래서 지경청(地境廳)이라고도 하는데, 그 목사가 앉았던 자리는 아주 묘를 쓰기에도 좋은 자리다, 그렇게 해서 그 목사제도가 지나가지고 저 일본강점기가 뒈 가지고 이것이 없어지니까 그 자리에 묘를 썻습니다. 그러니까 저기 묫자리가 뒈고, 거기 그 기념을 하기 위해서 비석을 뭐, 저는 그 돌집으로 지어진 비석 하나만 본 적이 잇고, 선배들 말허는 거 보면은 아홉 기가 잇엇다는 분이 계시고, 열 기가 잇었다는 분이 계시고, 또  일곱 기가 잇엇다 허는 말이 잇습니다. 그 중에 두 기는 바깟데만 구리쉐로 입혀가지고 비석을 멘들앗다. 그래서 이거는 그 시대가 지나니까 전부 도난당해 버리고 그 돌집으로 지어진 비석도 그거 하나만 본 적이 잇는데 그것도 이제는 없어졋습니다. 

겐데 그 목사 아들이 그건 여행이지요. 대정골로 지나가다가 자기 아버지 비석을 세웟으니까 이제 절을 허면서 울면서 절을 허니까, ᄀᆞ찌 온 수행원들이

“웨 이렇게 그 영광스러운 비석, 아버지 비석을 보시면서 우시면서 절을 헙니까?”

이렇게 허니까,

“아 이것이 이 비 공로 비석을 세울려고 허니까 우리 아부지가 얼마나 제주도에서 고셍을 많이 헷겟느냐? 그래서 절을 허면서 이제 울엇다.”

이런 말들이 전해오고 잇습니다. 

(지금 체마소에 무덤을 썻덴 하는데)

묘도 크게 적혀 잇습니다. 거기가 그 목사가 잠시 쉬어서 말을 갈아타는 때문에 그 쉬엇던 자리가 그렇게 그 명당이다 해서 그때 헷던 그 사람이 자손들 한테 얘기해서,

“이 자리에 묘를 쓰며는 좋다.”

고 해서 명당 묘를 써가지고 묘지가 뒈 버렷습니다. 그 밧은 이제 청수리유지가 뒈어가지고 청수리에서 그 리세를, 세금다 다 내곡 관리도 허고 잇는데 지금은 소유자가 뭐 시청이 뒈겟는가, 도청이 뒈겟는가? 남군 이씨 가문에서 그 묘를 썻습니다.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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등록자 최고관리자
댓글 0건 조회 1,244회 등록일 22-07-07 22:08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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